|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정교회 성당(537년)이 서방 가톨릭 성당(1204년)에서 정교회 성당(1261년)에서 이스탄불의 술탄 메흐메트 2세 모스크(1453년)로, 박물관(1935년)으로 변했다가 다시 모스크(2020년)가 되었다. 터키명은 아야소피야(Ayasofya).
모스크로 바뀐 후 첫 예배가 7월 24일 열렸는데, 86년 전인 1923년 7월 24일은 오스만제국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세브르(Sèvres)조약(1920년)을 대체한 로잔(Lausanne)조약이 체결되어 오늘날 터키의 국경과 주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날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이날을 택해 아야소피야 모스크로 바꾼 것이 터키의 주권 행사임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하기아) 지혜(소피아)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 교리 삼위일체에서 로고스(말씀)를 상징한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2세와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2세가 지은 성당 자리에 532년 유스티니아누스(Iustinianus) 1세의 명으로 지금의 성당 건설이 시작되어 537년에 완공하였다. 여러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웅장하고 멋있다. 물론 나는 이런 건물을 보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고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만...
완공 후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 내가 당신을 이겼소(Νενίκηκά σε Σολομών)”라고 우쭐댔다고 한다.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다. 하기아 소피아는 1520년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고 하니 우쭐할 만도 하다. 그런데 성당 크면 뭐하냐... 쓰잘데기 없는 짓...
나는 교회사에서 하기아 소피아를 늘 1054년 서로마 라틴가톨릭교회와 동로마그리스정교회의 이혼 사건으로 기억한다. 교회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갈려 떨어져 지내다 보니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특히 로마교황이 교회 대빵 킹왕갑이냐 아니냐를 두고 신경이 곤두섰고,(주1) 성체성사 때 빵을 누룩 있는 것으로 만드냐(동로마 그리스정교) 없는 것으로 만드냐(서로마 라틴가톨릭)를 두고 갈렸으며,(주2) 삼위일체 중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오느냐(동로마 그리스정교), 성부와 성자(filioque, 서로마 라틴가톨릭)에게서 나오느냐를(주3) 두고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급기야 이견을 조정하고자 1054년 레오 9세 로마 교황이 콘스탄티노플로 특사 3명을 보냈다. 특사로 간 훔베르투스 추기경은 동로마황제의 환대를 받았으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오스(Cerularios, Κηρουλάριος)는 아주 쌀쌀맞았다. 열 받았겠지.
1054년 7월 16일 토요일 오전 9시 신자들로 꽉 찬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성찬 미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 특사단장 프랑스 베네딕토회(우리나라 분도회 되긋다, Ordo Sancti Benedicti) 수도원장이었던 훔베르투스 추기경과 특사 둘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 제대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케룰라리오스를 겁나게 비난하며 파문하는 문서를 두고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심판하시리라(Videat Deus et iudicet).”
케룰라리오스, 너 파문한겨~
분도수도회의 사명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인데, 가서 형제를 파문해버렸다...
특사 일행은 열 받은 군중들에게 잡혀 디질 뻔 했으나 간신히 빠져나왔다. 특사 일행 중 한 명이 나중에 교황이 되는데, 그가 교황 스테파노 9세다.
파문당한 총대주교가 가만있을 리 만무. 4일 후 주교회의를 열고, 7월 24일 일요일(하필 이날도 7월 24일이네)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파문을 선언하였다.
맞파문!
서로 파문!!! 대박 사건이다.
이게 바로 1054년 대박 이혼, 이른바 대이교(大離敎).
*주1) 유대인들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히브리어 페사흐, 그리스어 파스카) 때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는다. 이른바 무교병이다. 로마교회는 예수의 수난, 십자가상 죽음, 부활 사건을 파스카의 신비로 여기고 성체성사로 기념하는데 이때 무교병을 쓴다. 그런데 동로마 교회는 무교병을 고집하지 않는다. 예수가 제자들과 한 마지막 저녁은 유월절이 아니라 무교병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2) 서로마교회는 교황을 세계 모든 그리스도교회의 수장으로 본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1대 로마주교, 즉 교황이고, 그로부터 권위가 이어진다. 멋있게 표현하면 동등한 자들 중 으뜸(First among equals)이라는 말이다. 반면 동로마교회는 모두가 동등하다. 따라서 로마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3) 325년 니케아 공의회,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결정문에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하였다.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qui ex Patre procedit, 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그런데 로마 교회가 400년 톨레도에서 이단을 축출하기 위해 연 제1차 공의회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Credimus ... in Spiritum quoque Paracletum ... ex Patre Filioque proceden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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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정교회 성당(537년)이 서방 가톨릭 성당(1204년)에서 정교회 성당(1261년)에서 이스탄불의 술탄 메흐메트 2세 모스크(1453년)로, 박물관(1935년)으로 변했다가 다시 모스크(2020년)가 되었다. 터키명은 아야소피야(Ayasofya).
모스크로 바뀐 후 첫 예배가 7월 24일 열렸는데, 86년 전인 1923년 7월 24일은 오스만제국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세브르(Sèvres)조약(1920년)을 대체한 로잔(Lausanne)조약이 체결되어 오늘날 터키의 국경과 주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날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이날을 택해 아야소피야 모스크로 바꾼 것이 터키의 주권 행사임을 만방에 과시한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하기아) 지혜(소피아)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 교리 삼위일체에서 로고스(말씀)를 상징한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2세와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2세가 지은 성당 자리에 532년 유스티니아누스(Iustinianus) 1세의 명으로 지금의 성당 건설이 시작되어 537년에 완공하였다. 여러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웅장하고 멋있다. 물론 나는 이런 건물을 보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고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만...
완공 후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 내가 당신을 이겼소(Νενίκηκά σε Σολομών)”라고 우쭐댔다고 한다.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다. 하기아 소피아는 1520년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고 하니 우쭐할 만도 하다. 그런데 성당 크면 뭐하냐... 쓰잘데기 없는 짓...
나는 교회사에서 하기아 소피아를 늘 1054년 서로마 라틴가톨릭교회와 동로마그리스정교회의 이혼 사건으로 기억한다. 교회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갈려 떨어져 지내다 보니 서로 사이가 멀어졌다.
특히 로마교황이 교회 대빵 킹왕갑이냐 아니냐를 두고 신경이 곤두섰고,(주1) 성체성사 때 빵을 누룩 있는 것으로 만드냐(동로마 그리스정교) 없는 것으로 만드냐(서로마 라틴가톨릭)를 두고 갈렸으며,(주2) 삼위일체 중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오느냐(동로마 그리스정교), 성부와 성자(filioque, 서로마 라틴가톨릭)에게서 나오느냐를(주3) 두고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급기야 이견을 조정하고자 1054년 레오 9세 로마 교황이 콘스탄티노플로 특사 3명을 보냈다. 특사로 간 훔베르투스 추기경은 동로마황제의 환대를 받았으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오스(Cerularios, Κηρουλάριος)는 아주 쌀쌀맞았다. 열 받았겠지.
1054년 7월 16일 토요일 오전 9시 신자들로 꽉 찬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성찬 미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 특사단장 프랑스 베네딕토회(우리나라 분도회 되긋다, Ordo Sancti Benedicti) 수도원장이었던 훔베르투스 추기경과 특사 둘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 제대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케룰라리오스를 겁나게 비난하며 파문하는 문서를 두고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심판하시리라(Videat Deus et iudicet).”
케룰라리오스, 너 파문한겨~
분도수도회의 사명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인데, 가서 형제를 파문해버렸다...
특사 일행은 열 받은 군중들에게 잡혀 디질 뻔 했으나 간신히 빠져나왔다. 특사 일행 중 한 명이 나중에 교황이 되는데, 그가 교황 스테파노 9세다.
파문당한 총대주교가 가만있을 리 만무. 4일 후 주교회의를 열고, 7월 24일 일요일(하필 이날도 7월 24일이네)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파문을 선언하였다.
맞파문!
서로 파문!!! 대박 사건이다.
이게 바로 1054년 대박 이혼, 이른바 대이교(大離敎).
*주1) 유대인들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히브리어 페사흐, 그리스어 파스카) 때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는다. 이른바 무교병이다. 로마교회는 예수의 수난, 십자가상 죽음, 부활 사건을 파스카의 신비로 여기고 성체성사로 기념하는데 이때 무교병을 쓴다. 그런데 동로마 교회는 무교병을 고집하지 않는다. 예수가 제자들과 한 마지막 저녁은 유월절이 아니라 무교병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2) 서로마교회는 교황을 세계 모든 그리스도교회의 수장으로 본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1대 로마주교, 즉 교황이고, 그로부터 권위가 이어진다. 멋있게 표현하면 동등한 자들 중 으뜸(First among equals)이라는 말이다. 반면 동로마교회는 모두가 동등하다. 따라서 로마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3) 325년 니케아 공의회,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결정문에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하였다.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qui ex Patre procedit, 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그런데 로마 교회가 400년 톨레도에서 이단을 축출하기 위해 연 제1차 공의회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Credimus ... in Spiritum quoque Paracletum ... ex Patre Filioque proceden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