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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중동은 축구다] 북아프리카 축구의 문화사 7 –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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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전 숭실대 문창과 교수/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카타르 축구의 가장 빛나는 성취는 2019년 아시안컵 우승이다. 레바논을 2-0, 북한을 6-0, 사우디를 2-0으로 물리치고 3전 전승으로 조별 리그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운이 좋았다며 카타르 축구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16강전, 8강전에서 이라크와 한국을 각각 1-0으로 격파하자 카타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준결승 UAE 4-0 승리, 결승전에서는 아시안컵 역대 최다 우승팀 일본마저 3-1로 잠재운 7전 전승, 9득점 1실점의 완벽한 성적.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린 성과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 중 개최국 자동진출이 첫 본선 진출인 경우는 카타르가 최초다. 하지만, 그들은 아시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월드컵 무대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돈으로 출전권을 샀다는 뒷말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카타르 축구의 시발점은 1946년이다. 정유회사 유럽 직원들이 동호회를 만들었고, 1950년 무렵 본격적인 팀들이 생겼다. 1960년에는 축구협회가 결성되었으며 1971년 독립 이후 이듬해 FIFA 가입, 이스라엘이 AFC를 떠나 유럽으로 옮겨간 후인 1974년 AFC에 가입했다.

2019년 이전까지, 카타르 축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1981년 호주에서 열린 제 3회 U20 월드컵이다. 1980년 아시아 대회 우승국은 한국, 준우승팀이 카타르. 본선 티켓 16장 중 아시아에 배당된 자리는 둘. 카타르는 본선에서 폴란드를 1-0으로 이기고 미국과 1-1 무승부, 우루과이에 0-1로 졌지만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2공 2어시스트로 폭발한 최순호에 힘입어 이탈리아를 4-1로 대파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루마니아에 0-로 지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브라질전을 0-3으로 완패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카타르의 8강전 상대가 바로 브라질. 카타르는 잃을 것이 없다는 자세로 자신 있게 부딪쳤고, 세계 최강 축구의 나라를 3-2로 잡았다. 준결승 잉글랜드와의 경기도 거침없이 2-1로 돌파. 세계축구계는 무명의 소국이 일으킨 반란에 즐거워하며 아연실색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축구는 변방 취급을 받던 시절이다. 유럽 나라와 공식경기에서 대결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연령대를 막론하고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유럽팀들이 시즌 종료 후 2군을 이끌고 휴가를 겸한 연습경기를 하러 와도 감지덕지하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다. 그런데 결승 진출? 10월 18일 서독과의 결승전은 1-4로 패했지만, 카타르 축구는 세계 축구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이 빛나는 성취가 왜 일회성으로 그쳤는가? 역설적이지만, 성과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1982년 월드컵에서 카메룬이 3무, 알제리가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자 세계 축구계가 아프리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8년 현재 카타르의 인구는 264만, 시민권자는 40만. 북아프리카의 어린 선수들을 귀화시켜 육성 프로그램을 돌렸던 카타르의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카타르의 성공 이후 다른 중동 국가들도 카타르의 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아프리카의 유망주 소년들도 중동보다는 유럽 쪽을 더 선호했다. 인력수급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이 빛나는 성공을 이어가지 못한 배경이다.

그렇다고, 카타르 축구가 아프리카 소년들에게 기댄 것만은 아니다. 1963년 창설한 카타르 스타리그는 2019년 현재 아시아 리그랭킹 2위의 훌륭한 리그다. 참고로 1위는 중국 리그, 3위는 일본, 4위가 사우디아라비아, 5위가 한국, 6위가 이란이다. 2008년 본격적인 프로리그로 진화했고, 12개 팀이 1부리그, 6개팀이 2부리그에서 경쟁하며 일찍부터 승강제를 실시했는데, 2013/14 시즌부터는 1부리그 14개 팀, 2부리그(카타르 가스 리그)는 2군 팀 14팀과 2부리그 소속 6개 팀이 경쟁한다. 사비 에르난데스, 라울 곤잘레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은퇴 전 몇 시즌을 카타르에서 보내기도 했다. 가장 명문 팀은 14회 우승을 기록한 알 사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한 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가 월드컵 직후 이적해서 활약했고, 현재는 남태희와 정우영의 소속팀이다. 이정수는 딸의 이름을 카타르 수도의 이름을 따 ‘이도하’라고 짓기도 했다. 1989년 중동팀 최초로 AFC 챔피언스컵 우승, 2011년 우승 때는 한국의 전북 현대를 결승에서 제압했다. 2019/20 시즌에는 남태희, 정우영 외에도 구자철(알 가리파), 이재익(알 라이얀 SC)등 네 명의 한국 선수가 활약 중이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카타르 리그의 그늘은 왕족들이 구단을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점이다. 수익에는 관심이 없고, 머니 게임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 입장료도 받지 않을 정도로 수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선수가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면 고액의 연봉과 상당한 생활상의 지원이 이뤄지지만, 구단주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임금 체불과 이적료 미지급 등의 사고가 난다. 돈이 없어서 안 주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이적할 팀을 잡아 오거나 억울하면 FIFA에 소송하라는 식이다. 아예 계약서에 2개월 치 월급을 주면 언제든지 내보낼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경우도 있다.

월드컵은 1994년 최종예선 진출 실패, 제3국 자격으로 최종예선을 유치했다. 한국이 최종전에서 북한을 3-0으로 이기고, 이라크가 종료 직전 동점 골을 넣으며 일본과 비겨 한국이 극적으로 본선에 합류한 도하의 기적이 바로 카타르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1990년 예선 때는 최종예선 1승 4무로 한국, UAE에 밀려 3위, 간발의 차이로 본선 진출 실패. 1998년에는 0-1로 패한 사우디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했다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올림픽은 1984년 LA, 1992년 바르셀로나 2회 출전. 1992년에는 조별리그를 1승 1무 1패로 통과하고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아랍연맹 회원국 중 국토 크기가 뒤에서 두 번째의 소국이지만, 아시안컵에는 10회나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1988년, 2011년 두 차례 아시안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카타르의 최근 전략은 국제대회 유치다. 국가브랜드를 스포츠 행사와 연계하는 전략이다. 2006년 12월 아시안게임 개최. 1974년 이란 테헤란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 적은 있지만, 아랍 세계 최초의 아시안게임 유치였다. 핸드볼, 육상 등 용병선수들로 성적을 냈고, 같은 거리를 몇 차례 왕복한 마라톤 코스 등이 화제였다. 2019년 9월 28일~10월 6일까지는 도하 할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제17회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로 불리는 대회다.

2022년 월드컵은 유치 때부터 화제였다. 최초의 중동 월드컵이 문제가 아니라 섭씨 40도를 넘나들고 30~40%에 이르는 습도가 문제였다. 체감온도가 50도라면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중국이 개최권을 인수하려 한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FIFA의 해결책은 대회 기간을 11월 21일부터 12월 18일로 옮긴 것이다. 월드컵은 8월에 시작, 이듬해 5월에 끝나는 유럽 주요국의 리그 일정에 맞춰 6월에 개막하는 것이 관례였다. 장마 때문에 5월 31일에 개막한 2002 한일 월드컵이 가장 빨리 개막한 대회였을 정도로, 6월부터 한 달간 열린다는 일정은 불변이었다. 카타르 월드컵은 이 관례를 깨고 열리는 첫 번째 대회다. 월드컵 개최국 중 인구, 국토 크기가 가장 작은 나라라는 기록도 있다. 그전에는 1954년 대회 개최국인 스위스가 가장 소국이었다. 월드컵 경기장 중 서로 맨눈으로 보이는 곳이 있을 정도라는 소문도 있었다.

강점도 있다. 유럽과 시차가 거의 없어, 황금시간대에 중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도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올 관광객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미래의 관전 포인트도 있다. 알자지라 스포츠는 지단, 말디니 부자, 아르센 벵거, 베베투, 조지 웨아 등 빅 네임을 해설위원으로 초빙하고, 카타르를 중동 축구 문화 및 언론의 중심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왕족 압둘라 알 사니는 스페인 1부리그 말라가 C.F.를 인수했고, 왕세자는 프랑스 명문 팀 파리스 생제르맹 구단주다. 국왕 셰이크 하마드 이븐 할리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매를 타진하기도 했다. 수년 전 K리그 모 구단을 카타르 왕족이 사려 한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축구에 투자하고, 이벤트를 개최해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며, 중동지역의 언론문화를 선도한다는 전략은 10년 후, 20년 후 어떤 결과물을 카타르에 가져다줄 수 있을까.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재고하는 중대한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