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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슬람 이야기] 하기아 소피아(아야소피야) 성당/박물관/모스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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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하면 “솔로몬, 내 성당 봤냐? 니꺼보다 죽인다”라고 유스티니아노스 동로마 황제가 우쭐대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1204년 4차 십자군이 로마 라틴가톨릭 성당으로 바꾸었다.

프랑크인과 베네치아인이 이끈 십자군 통치는 1261년 베네치아의 숙적 제노바가 동로마를 도와 콘스탄티노플을 되찾아 끝났다. 하기아 소피아는 다시 정교회 성당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동로마는 치명상을 입었다. 새로운 로마로 기세등등했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은 갈기갈기 찢어져 종말로 향한다. *그리스어는 뷔잔티온(Byzantion, Βυζάντιον), 라틴어는 비잔티움(Byzantium)

동로마를 위협했던 셀축은 자체 핵분열을 거듭하면서 갈라져 사라져갔고, 그 빈자리를 막강한 새로운 강자가 채우기 시작하였다.

서양인들이 오토만(Ottoman)이라고 잘못 부른 오스만(Osman) 제국이 등장한 것이다. 셀축과 같은 오구즈(또는 오우즈, Oghuz) 대부족연합에서 나온 오스만 부족은 셀축제국의 공국으로 시작하여 쇠멸한 주군국 셀축의 영토를 이슬람의 지하드(Jihad)를 이념으로 삼아 접수하였다.

지하드는 아랍어로 “노력하다, 분투하다”라는 뜻의 동사 ‘자하다(Jahada)’에서 파생한 동명사로 “노력함, 분투함”을 가리킨다. 성전(聖戰)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무슬림들이 무척 싫어하는 말이다.

사실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사전적으로 지하드는 큰 지하드와 작은 지하드로 나뉘어 큰 지하드는 신앙인이 내적인 유혹과 싸우는 것, 작은 지하드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 맞서 방어적인 투쟁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무슬림들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오스만제국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방어적인 공격뿐 아니라 먼저 공격하기도 하고 약탈도 하며 땅을 넓혔다.

무슬림은 무슬림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도 역사적으로 보면 증명할 수 없는 명제다. 무슬림은 무슬림을 공격하고 죽였다. 그러니 자꾸 이상적인 이슬람, 이상적인 무슬림만 이야기 하지 말자.

그런데 어찌 이런 현상이 무슬림에게만 적용되겠는가. 그리스도인, 불자도 다 마찬가지다.

예수도 양면을 다 보이지 않았는가. 마태오 복음서 5장 39절에서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라고 하였지만, 경비병에게 뺨을 맞았을 때 다른 뺨을 대지 않고 항의하였다(요한 복음서 18장 22-23절).

아나톨리아 반도를 정복한 오스만군의 기세에 동로마 제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오스만군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1453년 4월 6일부터 포위한 채 공격하였고, 결국 53일째인 5월 29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도시는 오스만 제국의 손에 떨어졌다.

술탄 메흐메트 2세(1432-1481, Sultan Mehmet II)의 군대는 정복한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고, 자제력을 잃지 않고 주민들을 대하였다.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메흐메트 2세는 스스로를 로마제국의 카이사르(Kayser-i Rum)로 여겼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새로운 로마, 제2의 로마 대신 정교회 수호자로 모스크바를 꼽기 시작하였다. 제3의 로마 모스크바...

하기아 소피아 성당 안에는 죽은 자들이 널부러져 바닥에 피가 흥건하였기에 메흐메트 2세는 말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이 성당 내 모자이크 벽화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것을 막고 파괴하거나 기물을 약탈하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고, 곧 자신의 모스크로 선언하였다.

술탄의 모스크.

오늘날 이교도의 손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벽화들이 일부 훼손된 것 빼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하기아 소피아가 성당에서 술탄의 모스크로 바뀌어 술탄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모스크로 삼는 일은 이슬람 역사에서 흔한 일이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우마야 대모스크도 원래는 성당이었다. 무슬림들은 재활용의 천재들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무슬림이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신앙만 아니라면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교를 꺼려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요, 신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이다. 따라서 인간 예수, 위대한 예언자, 완벽한 예언자 예수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을 찝찝하게 여길 일도 없다.

무슬림 중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적잖다. 아랍어로 ‘이사(Isa, Issa)’가 예수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예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때 반드시 “그분께 평화가 있으시길(알레이힛 살람, Alayhi al-Salam)”이라는 표현을 붙인다.
메흐메트 2세 이래 술탄들은 하기아 소피아를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적어도 1453년부터 18세기 말까지 약 300년간 성당 내 벽화는 그대로 노출된 채 있었다. 가리지도 회칠하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가린 곳은 처음 병사들이 훼손한 곳뿐이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가렸다. 성당을 위협한 것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탐욕스런 무슬림이 아니라 지진이었다.

1710년대에 스웨덴 국왕 카를 12세(Karl XII) 수행원이었던 코르넬리우스 루스(Cornelius Loos)는 술탄 아흐메트 3세의 허가를 받고 하기아 소피아 내부를 그렸는데, 이를 보면 성당 내 모자이크 벽화가 아주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47년 술탄 압뒬메지드(1839-1861 재위, Sultan Abdülmecid)는 이탈리아인 포사티(Fossati) 형제 가스파레(Gaspare, 1809-1883)와 쥬세페(Giuseppe, 1822-1891)에게 하기아 소피아 전면 수리를 맡겼고, 2년에 걸쳐 800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어 공정을 마쳤다. 이때 메흐메트 2세 때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가린 곳을 복원하였다.

당시 작업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참고하실 분을 위하여... Aya Sofia, Constantinople, as Recently Restored by Order of H.M. the Sultan Abdul Medjid: From the Original Drawings by Chevalier Gaspare Fossati, esq. London: Colnaghi & Co.,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