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15호. 2022년 1월 2일 일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테러리스트에 갇힌 이슬람: 미국 미디어 속 이슬람
이수정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사람들은 “왜 우리는 이슬람을 싫어하고 무서워할까요?”, 혹은 “왜 우리는 이슬람을 오해하나요?”라고 묻는다. 해당 질문의 답변으로 연구자들은 ‘미디어 속 이미지’를 꼽는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슬람의 부정적 이미지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슬람’과 관련되었다고 하면,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모습과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디어 콘텐츠가 만든 이미지는 영상과 이야기라는 강렬한 매개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쉽게, 더 오랫동안 남는다. 우리 사회 역시, 주로 서구 세계가 만든 이슬람의 이미지를 큰 비판 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하였다.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미디어의 종류는 신문, 뉴스부터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까지 확장되었다.
할리우드(Hollywood)에서 제작하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국가 시청자가 보고 즐기는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제작자와 방송사, 투자자에 따라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는 백인 서구 사회와 다른 문화권을 묘사하는 전형(典型)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인종에 따라 착한 주인공과 악역을 정하기도 하였고, 국적에 따라 고정 역할과 획일화된 성격, 이미지가 존재하였다. 콘텐츠 제작자는 이런 암묵적 규칙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최근, 성별, 인종, 종교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기존의 전형을 깨는 여러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는 여성 영웅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미국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흑인 남성을 선택하면서 기존 법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반길 것이고, 또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과거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는 미디어에 등장한 사회의 변화상을 있는 그대로 습득할 것이다.
국제 사회 변화 흐름, 미국 사회가 보는 이슬람 세계를 향한 시선 변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덩굴처럼 얽히며, 미국에서 제작한 여러 미디어 속 이슬람 이미지는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미국 사회에 안긴 큰 충격만큼이나 오랫동안 미디어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소비되었다. 드라마 속 주요 등장인물이 9/11테러의 직·간접 피해자라는 설정은 캐릭터에 가슴 아픈 과거 서사를 더하는 용도로 최근까지도 자주 등장한다. 이슬람 관련 감정,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 등 역시 드라마 시리즈의 주요 플롯으로 등장한다.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슬람, 무슬림 관련 이야기를 다루지만, NCIS와 홈랜드(Home Land)라는 두 편의 드라마로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슬람과 최근 변화를 알아보려 한다.
첫 번째로 살펴볼 드라마 시리즈는 미국 4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로 꼽히는 CBS가 2003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여 2021년 19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NCIS(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이다. NCIS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한 JAG의 스핀오프(Spin-Off)로 제작되었다. 2007년 방영한 NCIS의 5번째 시리즈는 미국 내 시청률 1위를 차지하였고,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한 드라마로 꼽힌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NCIS의 장르는 2000년대 초반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범죄 수사물이다. 해군 범죄수사국 내 범죄수사팀이 주인공이고, 등장인물 개개인 서사와 함께 범죄 해결 내용이 주요 줄거리이다. 군대 내에서 발생한 범죄부터, 마약, 금융 범죄, 국제 요인 경호, 국제 수사 공조, 테러 조직 소탕까지 가상 현실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내용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주요 인물의 서사 및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악당 캐릭터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적(敵)’ 이미지를 대변한다. 작품 내 주축이자 팀을 이끄는 인물은 깁스(Leroy Jethro Gibbs)이다. 극 중에서 깁스는 1954년생으로 1976년 해병대에 입대한 후, 15년간 저격수로 복무하고, 1991년 해군 수사대에서 일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깁스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나온다. 결국, 부자(父子)의 삶 자체가 미국 현대사 속 전쟁과 국제 사회 갈등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다.
드라마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깁스 이야기를 모아보면, 깁스는 군인과 특수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전쟁과 다양한 첩보 작전에 참여하였다. 특히 깁스는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고, 깁스와 대결 구도를 설정하는 악역은 대체로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체제 국가 출신이다. 이를 증명하듯 깁스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또한 깁스와 함께 활동한 동시대 인물들도 냉전 시대 속 소련과 대립한 서사를 갖고 있다. 이들 서사는 끊임없이 과거와 연결되며, 갈등의 주요 구조를 구소련 잔재와 미국 사회, 혹은 러시아의 음모와 미국 세계관과 같이 냉전 시대의 이분법적 구성으로 설정하였다.
반면에, 깁스와 함께 팀을 구성하는 젊은 세대 특수 요원 중 특히 눈여겨볼 인물은 다비드(Jiva David)이다. 극 중에서 다비드는 이스라엘 정부 기관 모사드(Mossad) 국장의 딸이다. 다비드에게는 여동생이 있는데, 하마스(Hamas)의 자살폭탄테러로 사망한 것으로 설정하였다. 배다른 오빠의 경우, 팔레스타인 어머니를 둔 것으로 나오며,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다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테러 행위를 돕고 실행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다비드와 관련한 에피소드에는 중동 지역의 정세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때문에 변화한 일반인의 삶의 모습, 파생 가능한 폭력적 사건,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이 반영된 일화 등 주로 이슬람 세계와 연결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다비드라는 인물 자체도 영어와 아랍어,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물이다. 깁스의 과거와 연결되는 사건이 아닌, 극 중에서 현재 활동하는 젊은 세대 팀원들이 직접 마주하는 중요 사건의 갈등 소재 대다수가 이슬람 세계와 관련이 있다. 즉, NCIS의 중심인물과 이들의 적(敵)은 세대에 따라 소련(러시아)에서 중동(이슬람)으로 이어졌고, 이는 미국이 국제 사회 속에서 대립한 주요 국가 및 문화권과 일치한다. 각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적 배경과 구사 가능한 언어, 활용 가능한 인적 자원까지 미국이 지나온 현대사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NCIS가 다룬 여러 이야기를 살펴보면, 방영 시기에 따라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 방영 초기, 무슬림을 대체로 ‘테러리스트’로 단순하게 획일화하여 묘사하였다. 일례로, 시리즈 초기에 등장한 여성 구성원인 케이틀린은 지바의 배다른 오빠이자,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저격으로 사망하여 극에서 하차하였다. 이 외에도 무슬림은 미국 본토 공격 시도를 하는 세력, 이슬람 세계는 미국 군인이 파병을 나가 사망하게 되는 열악한 세상, 미국 내 모스크와 무살라(예배소)는 테러리스트가 모일 수 있는 장소이자 테러의 거점으로 그린다.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한 가족 구성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이 개종자를 살해하는 내용이 방영되는 등 이슬람과 무슬림을 향한 부정적인 관점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이슬람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과 등장인물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테러를 일으키거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지만, 단순히 이들의 폭력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행동의 원인과 무슬림 입장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악인으로만 그려왔던 무슬림을,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악한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다시 설정하기도 하였다. 무슬림 여성 역시 남성에게 억압당하면서도 자신과 자녀의 삶을 위해 탈출을 꿈꾸는 인물로 묘사하는 등, 시리즈 방영 초기보다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NCIS만 이슬람 세계 및 무슬림 관련 내용을 다룬 것은 아니다. 다른 다양한 드라마도 주제에 맞는 소재를 다루면서 이슬람 세계 및 무슬림을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른 방송사 및 제작사 드라마 역시 NCIS의 흐름과 비슷하게 시대에 따라 이슬람 세계의 부정적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에는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세력과 이들에게 납치·감금되었던 군인 포로라는 인물을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해당 드라마는 미국 케이블 방송사 쇼타임(SHOWTIME)이 2011년 10월 2일 방영을 시작한 홈랜드(Homeland)이다. 2020년을 끝으로 종영한 홈랜드는 2010년대 대표적 첩보 드라마로 꼽힌다. 특히 2011년과 2012년 방영한 2개 시즌은 이슬람과 관련한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홈랜드는 미 해병대 보병 부사관인 브로디(Nicholas Brody) 하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브로디는 이라크 전쟁 중 진행한 작전 과정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8년 후, 미군은 알카에다를 급습하는 작전을 수행하다가, 테러 조직 은신처에 포로로 잡혀있던 브로디를 발견하고 구조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브로디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CIA 요원인 매티슨(Carrie Mathison)은 브로디의 진짜 정체를 의심하고,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매티슨은 자신의 정보원이 사형되기 직전 “알카에다에 테러조직에 포섭된 미군 포로가 있다”는 말을 남긴 사실을 상기하며, 브로디가 포섭된 미군 포로라 추정하였다. 이후, 브로디의 정체를 밝히려는 매티슨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홈랜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알카에다를 언급하고, 포로로 잡힌 미군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과 중동 관계 및 이슬람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였다. 이전의 드라마들이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간접적인 요소를 활용해 묘사하였다면, 홈랜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안보 위협이라는 소재를 극 중심에 두고 풀어나간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홈랜드는 테러리스트인 무슬림과 이를 방어하는 국가를 지켜내는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이 제작한 미디어 속 이슬람의 이미지는 테러리스트에 갇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치열한 갈등 구도를 형성하였다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갈등의 무게추는 이슬람 세계로 이동하였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9/11을 겪은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부정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소비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테러리스트로만 그려지던 이슬람과 무슬림의 이미지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20년 가까이 방영한 드라마 시리즈 속에서도 변화가 있었고, 다른 드라마는 새로운 이슬람과 무슬림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부정적 이미지가 다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오직 테러리스트라는 전형에서 벗어나 사람 수만큼 다양한 모습을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 듯하다.
시사 칼람(Kalam) 15호. 2022년 1월 2일 일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테러리스트에 갇힌 이슬람: 미국 미디어 속 이슬람
이수정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사람들은 “왜 우리는 이슬람을 싫어하고 무서워할까요?”, 혹은 “왜 우리는 이슬람을 오해하나요?”라고 묻는다. 해당 질문의 답변으로 연구자들은 ‘미디어 속 이미지’를 꼽는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슬람의 부정적 이미지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슬람’과 관련되었다고 하면,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모습과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디어 콘텐츠가 만든 이미지는 영상과 이야기라는 강렬한 매개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쉽게, 더 오랫동안 남는다. 우리 사회 역시, 주로 서구 세계가 만든 이슬람의 이미지를 큰 비판 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하였다.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미디어의 종류는 신문, 뉴스부터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까지 확장되었다.
할리우드(Hollywood)에서 제작하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국가 시청자가 보고 즐기는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제작자와 방송사, 투자자에 따라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는 백인 서구 사회와 다른 문화권을 묘사하는 전형(典型)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인종에 따라 착한 주인공과 악역을 정하기도 하였고, 국적에 따라 고정 역할과 획일화된 성격, 이미지가 존재하였다. 콘텐츠 제작자는 이런 암묵적 규칙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최근, 성별, 인종, 종교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기존의 전형을 깨는 여러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는 여성 영웅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미국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흑인 남성을 선택하면서 기존 법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반길 것이고, 또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과거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는 미디어에 등장한 사회의 변화상을 있는 그대로 습득할 것이다.
국제 사회 변화 흐름, 미국 사회가 보는 이슬람 세계를 향한 시선 변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덩굴처럼 얽히며, 미국에서 제작한 여러 미디어 속 이슬람 이미지는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미국 사회에 안긴 큰 충격만큼이나 오랫동안 미디어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소비되었다. 드라마 속 주요 등장인물이 9/11테러의 직·간접 피해자라는 설정은 캐릭터에 가슴 아픈 과거 서사를 더하는 용도로 최근까지도 자주 등장한다. 이슬람 관련 감정,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 등 역시 드라마 시리즈의 주요 플롯으로 등장한다.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슬람, 무슬림 관련 이야기를 다루지만, NCIS와 홈랜드(Home Land)라는 두 편의 드라마로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슬람과 최근 변화를 알아보려 한다.
첫 번째로 살펴볼 드라마 시리즈는 미국 4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로 꼽히는 CBS가 2003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여 2021년 19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NCIS(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이다. NCIS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한 JAG의 스핀오프(Spin-Off)로 제작되었다. 2007년 방영한 NCIS의 5번째 시리즈는 미국 내 시청률 1위를 차지하였고,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한 드라마로 꼽힌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NCIS의 장르는 2000년대 초반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범죄 수사물이다. 해군 범죄수사국 내 범죄수사팀이 주인공이고, 등장인물 개개인 서사와 함께 범죄 해결 내용이 주요 줄거리이다. 군대 내에서 발생한 범죄부터, 마약, 금융 범죄, 국제 요인 경호, 국제 수사 공조, 테러 조직 소탕까지 가상 현실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내용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주요 인물의 서사 및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악당 캐릭터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적(敵)’ 이미지를 대변한다. 작품 내 주축이자 팀을 이끄는 인물은 깁스(Leroy Jethro Gibbs)이다. 극 중에서 깁스는 1954년생으로 1976년 해병대에 입대한 후, 15년간 저격수로 복무하고, 1991년 해군 수사대에서 일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깁스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나온다. 결국, 부자(父子)의 삶 자체가 미국 현대사 속 전쟁과 국제 사회 갈등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다.
드라마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깁스 이야기를 모아보면, 깁스는 군인과 특수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전쟁과 다양한 첩보 작전에 참여하였다. 특히 깁스는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고, 깁스와 대결 구도를 설정하는 악역은 대체로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체제 국가 출신이다. 이를 증명하듯 깁스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또한 깁스와 함께 활동한 동시대 인물들도 냉전 시대 속 소련과 대립한 서사를 갖고 있다. 이들 서사는 끊임없이 과거와 연결되며, 갈등의 주요 구조를 구소련 잔재와 미국 사회, 혹은 러시아의 음모와 미국 세계관과 같이 냉전 시대의 이분법적 구성으로 설정하였다.
반면에, 깁스와 함께 팀을 구성하는 젊은 세대 특수 요원 중 특히 눈여겨볼 인물은 다비드(Jiva David)이다. 극 중에서 다비드는 이스라엘 정부 기관 모사드(Mossad) 국장의 딸이다. 다비드에게는 여동생이 있는데, 하마스(Hamas)의 자살폭탄테러로 사망한 것으로 설정하였다. 배다른 오빠의 경우, 팔레스타인 어머니를 둔 것으로 나오며,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다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테러 행위를 돕고 실행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다비드와 관련한 에피소드에는 중동 지역의 정세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때문에 변화한 일반인의 삶의 모습, 파생 가능한 폭력적 사건,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이 반영된 일화 등 주로 이슬람 세계와 연결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다비드라는 인물 자체도 영어와 아랍어,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물이다. 깁스의 과거와 연결되는 사건이 아닌, 극 중에서 현재 활동하는 젊은 세대 팀원들이 직접 마주하는 중요 사건의 갈등 소재 대다수가 이슬람 세계와 관련이 있다. 즉, NCIS의 중심인물과 이들의 적(敵)은 세대에 따라 소련(러시아)에서 중동(이슬람)으로 이어졌고, 이는 미국이 국제 사회 속에서 대립한 주요 국가 및 문화권과 일치한다. 각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적 배경과 구사 가능한 언어, 활용 가능한 인적 자원까지 미국이 지나온 현대사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NCIS가 다룬 여러 이야기를 살펴보면, 방영 시기에 따라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 방영 초기, 무슬림을 대체로 ‘테러리스트’로 단순하게 획일화하여 묘사하였다. 일례로, 시리즈 초기에 등장한 여성 구성원인 케이틀린은 지바의 배다른 오빠이자,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저격으로 사망하여 극에서 하차하였다. 이 외에도 무슬림은 미국 본토 공격 시도를 하는 세력, 이슬람 세계는 미국 군인이 파병을 나가 사망하게 되는 열악한 세상, 미국 내 모스크와 무살라(예배소)는 테러리스트가 모일 수 있는 장소이자 테러의 거점으로 그린다.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한 가족 구성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이 개종자를 살해하는 내용이 방영되는 등 이슬람과 무슬림을 향한 부정적인 관점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이슬람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과 등장인물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테러를 일으키거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지만, 단순히 이들의 폭력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행동의 원인과 무슬림 입장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악인으로만 그려왔던 무슬림을,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악한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다시 설정하기도 하였다. 무슬림 여성 역시 남성에게 억압당하면서도 자신과 자녀의 삶을 위해 탈출을 꿈꾸는 인물로 묘사하는 등, 시리즈 방영 초기보다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NCIS만 이슬람 세계 및 무슬림 관련 내용을 다룬 것은 아니다. 다른 다양한 드라마도 주제에 맞는 소재를 다루면서 이슬람 세계 및 무슬림을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른 방송사 및 제작사 드라마 역시 NCIS의 흐름과 비슷하게 시대에 따라 이슬람 세계의 부정적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에는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세력과 이들에게 납치·감금되었던 군인 포로라는 인물을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해당 드라마는 미국 케이블 방송사 쇼타임(SHOWTIME)이 2011년 10월 2일 방영을 시작한 홈랜드(Homeland)이다. 2020년을 끝으로 종영한 홈랜드는 2010년대 대표적 첩보 드라마로 꼽힌다. 특히 2011년과 2012년 방영한 2개 시즌은 이슬람과 관련한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홈랜드는 미 해병대 보병 부사관인 브로디(Nicholas Brody) 하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브로디는 이라크 전쟁 중 진행한 작전 과정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8년 후, 미군은 알카에다를 급습하는 작전을 수행하다가, 테러 조직 은신처에 포로로 잡혀있던 브로디를 발견하고 구조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브로디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CIA 요원인 매티슨(Carrie Mathison)은 브로디의 진짜 정체를 의심하고,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매티슨은 자신의 정보원이 사형되기 직전 “알카에다에 테러조직에 포섭된 미군 포로가 있다”는 말을 남긴 사실을 상기하며, 브로디가 포섭된 미군 포로라 추정하였다. 이후, 브로디의 정체를 밝히려는 매티슨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홈랜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알카에다를 언급하고, 포로로 잡힌 미군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과 중동 관계 및 이슬람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였다. 이전의 드라마들이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간접적인 요소를 활용해 묘사하였다면, 홈랜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안보 위협이라는 소재를 극 중심에 두고 풀어나간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홈랜드는 테러리스트인 무슬림과 이를 방어하는 국가를 지켜내는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이 제작한 미디어 속 이슬람의 이미지는 테러리스트에 갇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치열한 갈등 구도를 형성하였다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갈등의 무게추는 이슬람 세계로 이동하였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9/11을 겪은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부정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소비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테러리스트로만 그려지던 이슬람과 무슬림의 이미지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20년 가까이 방영한 드라마 시리즈 속에서도 변화가 있었고, 다른 드라마는 새로운 이슬람과 무슬림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부정적 이미지가 다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오직 테러리스트라는 전형에서 벗어나 사람 수만큼 다양한 모습을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