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12호 이란 핵프로그램과 공존하기 (성일광)

시사 칼람(Kalam) 12호. 2021년 11월 06일 토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이란 핵프로그램과 공존하기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이란과 P5+1(미, 러, 중, 영, 프, 독) 양측이 11월 29일 핵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협상 재개가 최종합의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이란과 미국의 입장 차가 여전히 너무 크기 때문이다.

 네타냐후(Netanyahu) 총리에서 베네트(Bennett) 총리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스라엘의 대이란 강경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베네트는 이란과 핵협상을 추진하려는 미국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협상 의지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무력을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써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꺾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스라엘은 나탄즈(Natanz) 핵시설 등 핵개발 관련 시설 파괴 공작과 함께 수년 동안 많은 이란 핵과학자를 암살했지만, 이란의 핵개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미국의 대이란 최대 압박은 이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지만, 이란의 핵개발 의지를 꺽진 못했다. 이란은 ‘저항 경제’로 버티면서 수입품을 점차 국산화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 경제의 숨통을 터주고 있는 만큼 미국의 대이란 압박이 이란의 핵개발 의지를 꺽는데 성공하기는 어렵다.


이스라엘은 공개적으로 이란 핵시설 타격을 천명하며 예산 배정은 물론, 군사 훈련까지 준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은 이란의 민수용 핵개발을 용인해 왔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있다는 잘못된 망상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망상이 이스라엘 수뇌부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란은 이미 농도 60% 이상의 우라늄 농축을 개시했고, 금속 우라늄 제조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시설이 이미 이란 전역에 퍼진 지도 오래다. 따라서 이란을 우라늄 농축 제로 국가로 되돌린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고,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 또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란은 이미 핵개발 관련 정보와 지식을 충분히 확보했고, 핵개발 의지 역시 확고하며, 핵능력을 보유한 만큼 핵과학자 몇 명을 암살하거나 핵시설 몇 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불능화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핵 프로그램에 집착할까? 미국은 이란을 최대한 압박해 ‘생존’과 ‘핵개발’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지만, 이란은 자국의 생존이 핵개발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다. 강대국이 되길 원하는 이란은 서방 강대국처럼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길 절실히 원하고 있다. 핵 프로그램은 이란의 국가적 이슈이며 자부심의 상징이며 자존심의 문제이다.


핵시설을 공습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계획은 몇 가지 심각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첫째, 이미 앞서 지적했듯, 설사 이란 핵시설 몇 곳을 성공적으로 공습한다고 하더라도 이란 핵 프로그램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둘째, 핵시설 타격은 미국의 공조와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미국이 쉽게 수긍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이란 본토 공습은 곧 헤즈볼라와 전쟁을 치러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수십만 발의 로켓과 명중률 높은 로켓까지 보유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안보에 가장 위험한 단체이다.

이란을 제어할 마땅한 수단도 없고, 미국의 핵협상 의지를 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는 이란 핵 프로그램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 이란의 민수용 핵 프로그램을 용인하되 군사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미국은 곧 재개되는 핵협상에서 이란의 미사일 개발 제한이나 역내 시아파 민병대 지원 중단을 논의하는 것보다 핵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미국이 이란에 추가 협상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15년 합의한 핵합의(JCPOA)를 개정 없이 그대로 다시 복원하는 것 외에 다른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기 전까지 이란은 핵합의를 충실하게 준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