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6호 북한은 이란의 미래다(?) (성일광)

시사 칼람(Kalam) 6호. 2021년 8월 09일 월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북한은 이란의 미래다(?)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중동산업협력포럼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북한이 이란의 갈 길을 보여준다” – 이스라엘 국방부 고위관리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이란과 핵협상 속도를 높이자 이스라엘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베넷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6월 코카비(Aviv Kochavi) 군참모총장을 미국에 급파하여 이스라엘의 입장을 개진하였고, 이르면 8월 중에 직접 워싱턴을 방문하여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협상이 잠시 중단된 것을 기회로 보고 있다.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한번 미국을 설득할 기회를 잡았다. 이란의 강경파 대통령 이브라힘 라이시의 등장으로 핵협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이스라엘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핵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스라엘은 다른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 베넷 총리는 이란 핵시설 타격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고, 국방부에 예산 증액도 약속하였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이 이란의 최종 목표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란이 몇 달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른바 핵문턱(nuclear threshold)에 선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이란에 지닌 깊은 불신감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정책은 물론, 궁극적으로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영향을 주려고 시도한 경우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 2기 정부가 2013년부터 이란과 핵협상을 벌였고 2015년 7월 결국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타결되면서 핵위기가 해소되었다. 핵협상 기간 동안 네타냐후 총리는 핵협상 반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여 오바마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렸다. 2012년 네타냐후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와 경쟁을 벌였던 공화당 후보 롬니(Mitt Romney)를 이스라엘로 초청해 힘을 실어주었고, 백악관이 아닌 공화당 초청 미 의회 연설에서 핵합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어깃장을 놓았다. 네타냐후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이스라엘 국가 존속을 크게 위협하기에 핵시설 타격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설적이게도 네타냐후의 이란 핵위기 과장과 반복된 이란 공격 위협이 오히려 핵협상 타결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네타냐후의 악몽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길은 핵협상 타결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협상을 서둘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탈퇴한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때문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몇 가지 정황이 있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친분 덕에 두 정상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다. 트럼프는 요르단강 서안 땅 30%를 이스라엘에 넘기는 평화안을 도출하며 친이스라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이보다 앞서 2015년 네타냐후 총리는 5만 5000쪽에 달하는 이란 핵개발 문건과 CD 183개를 테헤란에서 입수했다며 전격 공개하였다. 네타냐후는 핵합의 이후에도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계속 이어갔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근 이란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핵개발 관련 자료를 잃어버렸고, 이스라엘이 훔쳐 간 게 맞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입수한 이란 핵개발 자료를 미국과 공유하였다. 이러한 자료에 근거한 네타냐후의 설득에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탈퇴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이 가설이 맞다면 작금의 이란 핵위기는 간접적이지만 이스라엘이 초래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핵합의 복원을 위하여 6회에 걸쳐 이란과 핵 협상에 집중했다. 네타냐후는 실각하기 전까지 핵협상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였지만, 협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베넷 신임 총리는 바이든 정부의 핵협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베넷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핵협상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막지 못한다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어깃장을 놓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이스라엘의 요구조건을 관철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일까? “북한이 이란의 갈 길을 보여준다”라는 문구가 이스라엘의 대이란 인식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수년 전에 만난 이스라엘 언론사 와이넷(Ynet)의 베테랑 기자 벤이샤이(Ron Ben-Yishai)는 “북한이 이란의 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하는 한 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북한이 핵 협상에 꾸준히 임해 왔지만, 협상이 중단된 시기에는 어김없이 핵실험을 감행하여 결국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이란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이스라엘은 믿는 것이다. 게다가 이란과 북한은 비밀리에 핵개발 기술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기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의심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북한 사례에서 이란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핵협상 중단의 책임은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에게 있다. 이란은 바이든 뿐만 아니라 차기 미국 대통령이 핵합의를 의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탈퇴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을 미 의회가 발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이 이 조건을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핵합의를 위해 헌법까지 수정할리 만무하고, 이런 정황을 이란 역시 잘 알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핵합의 체결 이후 이란의 탄도 미사일 개발과 함께 중동 내 친이란 조직 활동을 제한하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란 역시 핵합의 이후 미국과 또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측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야 해법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핵협상 타결과 상관없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따라서 핵협상과 상관없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해상에서 서로 양국 선박을 공격하면서 벌이는 맞대응은 역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관계를 보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의 분석이 마음에 와닿는다. 투키디데스는 떠오르는 신흥 도시 국가 아테네를 막기 위하여 스파르타가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결정을 한 데에는 아테네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역설하였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신뢰가 바닥인 만큼 무력 충돌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쉽게 끝나지도 않을 전망이다. 순탄치 않은 양국 관계가 몰고 올 역내 정세 변화가 걱정스러운 날들이다. 먹구름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