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5호 이스라엘 베넷 정부, 본격적인 시험대 오르나 (성일광 연구교수)

시사 칼람(Kalam) 5호. 2021년 7월 22일 목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베넷 정부, 본격적인 시험대 오르나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중동산업협력포럼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라피드-베넷 연립정부의 명운이 결정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현 정부는 어려운 고개를 두 번이나 넘어야 한다. 첫 번째 고개는 11월 의회에서 표결할 2022년 예산안이다. 만약 예산안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크네셋은 자동으로 해산되고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 연정 참여 정당 의석수를 합하면 61석이지만 1명이라도 이탈자가 나와 반대표를 던지면 예산안 통과가 어렵다.



두 번째 고개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다. 머리를 맞대고 연정 참여자 모두가 만족할만한 타협안을 짜내야 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재개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하디 아므르(Hady Amr)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7월 중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였다. 미국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이란 핵문제와 중국과의 전략경쟁에 밀렸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문제가 시급한 이유는 지난 5월 초 11일간 이어진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력충돌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상을 재개하지 않은 채 교착상태가 지속되면, 다시 무력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미국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란 핵협상이 중단된 만큼 미국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아니면 국제사회와 자국 내 비판을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마흐무드 압바스(Mahmud Abbas) 팔레스타인 수반은 미국과 주변 아랍국에 전달하기 위하여 평화협상 재개용 ‘요구사항’을 적은 목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지난 5월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때문에 압바스 수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체면을 구긴 정도를 넘어 평화협상을 주도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표라는 존재의 정당성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 최근 여론조사는 하마스의 지지도가 PA를 위협하거나 오히려 더 앞서는 결과를 보여준다. 따라서 압바스 수반의 움직임은 PA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하마스에 빼앗긴 팔레스타인 민심을 다시 찾으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성공 여부는 압바스 수반의 요구사항을 이스라엘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은 압바스 수반과 PA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압바스 수반의 말을 최대한 들어주어야 하겠지만, 아래 목록에서 보듯 무려 14개에 달하는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1.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오리엔트 하우스(Orient House)’를 개방할 것. 2001년 이후 폐쇄됐던 이곳은 팔레스타인 정치인 파이살 후세이니(Faisal Husseini)가 소유한 주택으로, PLO의 예루살렘 본부 역할을 하였다. 2001년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아리엘 샤론 총리는 건물 폐쇄를 명령하였다. 압바스 수반이 오리엔트 하우스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2차 인티파다’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지구 (PLO)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뜻이다.
  2. 예전의 성전산 지위를 회복할 것. 이스라엘 경찰이 성전산 안과 알아끄사 (al-Aqsa) 사원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을 제한하고, PA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유대인의 성전산 방문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다. 성전산 바로 아래로 유대인들이 와서 기도하는 통곡의 벽이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가끔 성전산에 기도하러 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의자나 집기를 아래 통곡의 벽으로 집어 던지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경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성전산을 방문하는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3.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퇴거 중단. 최근 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흐(Shaykh Jarrah) 지역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퇴거를 명령한 예루살렘 지방법원의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되었고, 지난 5월 하마스도 이를 전쟁 선포의 이유로 거론하였다. 팔레스타인 주민 퇴거는 극우 유대인 정착촌 지지 단체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에서 승소한 결과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대법원에 항소하여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4. 팔레스타인 재소자 석방. 2차 인티파다 전 팔레스타인 재소자 중 여성과 청년, 연장자를 석방하겠다고 양측이 합의하였던 내용이다.
  5.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건설 확장 중단. 특히 정착촌을 건설하기 전에 설치하는 출장소도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착촌 철수를 꺼리는 우파 정당이 많이 포함된 현 연립정부가 이를 수용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6. 요르단 계곡 팔레스타인 주민 주택 파괴 중단.
  7.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치 지역에 이스라엘군 진입 중단.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수색하는 군사작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8. 압수한 팔레스타인 치안군 무기 반환.
  9. 팔레스타인 이산가족 상봉 재개.
  10.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노동 허가 확대.
  11.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경찰과 관리, 세관의 알렌비(Allenby) 국경 복귀. 오슬로 합의에 따라 이뤄진 조치이나, 양측 관계가 악화하자 모두 철수시켰다. 요르단과 요르단강 서안을 연결하는 다미야 다리(Damiya bridge)로 화물 통과 재개와 요르단강 서안 국제공항 건설 허가 및 제리코(예리고) 자유무역 지대 활동 재개.
  12. 요르단강 서안의 약 60%를 차지하는 C지역을 공장과 발전소 건설 및 관광 프로젝트(사해지역)를 위하여 할당하고, 이 지역의 개발권과 허가권을 PA로 이전하며, B지역에서 PA 활동을 확장하여 이스라엘과 요르단 항구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고 요르단강 서안에 철로 개설.
  13. ‘파리 합의(Paris Protocol, 1994)’를 변경하여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화물에 면세 혜택을 주고 이스라엘의 관세 징수 중단.
  14. 요르단강 서안 무선 통신 4G 상용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평화협상 재개를 주문하자 압바스 수반은 재개 조건으로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하였고,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10개월간 정착촌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압바스 수반은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도 중단하여야 한다고 추가 조건을 내걸어 결국 평화협상은 열리지 못하였다. 압바스 수반의 정착촌 건설 중단 요구는 정당하지만, 더 중요한 평화협상을 앞두고 소탐대실한 것은 아닌지 아쉽다. 이번에도 압바스 수반이 요구사항 관철을 협상 재개 조건으로 삼는다면 사실상 협상은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협상을 위한 협상’을 하여야 하는 상황으로 다시 전락하여, 결국 협상은 개시도 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사다. 미국이 중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여야 하는데, 만일그러하지 못하면 이번 협상 재개 노력은 국내외 비판을 피하기 위한 눈속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10년 이상 중단되었던 평화협상 재개를 위하여 서로 눈높이를 낮추고, 수용할 수 있는 것부터 풀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과연 베넷 정부가 예산안과 팔레스타인 문제라는 두 개의 힘겨운 고개를 잘 넘을 수 있을까? 시험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