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4호 이집트, 영광이여 다시 한번! (성일광 연구교수)

시사 칼람(Kalam) 4호.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이집트, 영광이여 다시 한번!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중동산업협력포럼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오랫동안 이집트가 사라졌다. 너무 심한 말로 들릴수도 있지만, 1950-60년대 아랍의 영웅 가말 압둘 나세르 시대를 떠올리면, 지금의 이집트는 옛날과는 전혀 다른 이집트다.



과거 아랍 세계에서 정치, 역사, 문화, 예술 모든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는 바로 이집트였다. 이집트 영화와 음악은 아랍 세계의 표준이었고, 이집트는 전 세계 아랍인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이집트 은막의 스타 오마 샤리프(Omar Sharif)와 파텐 하마마(Faten Hamamah), 샤디아(Shadia)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동방의 별’이라는 예명이 붙었던 이집트 가수 움 쿨숨(Umm Kulthum)이 세상을 떠날 때 조문객은 나세르 대통령의 장례식 때보다 더 많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인기를 누렸다.


오늘날 석유 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걸프 산유 왕정국이 큰소리를 내는 중동의 현실에서 이집트는 좌절감을 맛보았다. 이집트를 세계의 근원(Mother of the World)으로 여기고 있는 이집트인은 치욕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동지역에서 이집트 노동자들이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왔다.


그런데 잊고 있던 이집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19년 2월 카이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그리스, 키프로스, 이태리,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함께 동지중해 가스포럼(EMGF)을 창설하면서 이집트는 역내 현안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때 분쟁의 평화적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이집트의 중요성을 새삼 보여주었다.


물론 과거에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다툴 때마다 늘 중재 역할을 도맡아왔다. 모르시(Mohammed Morsi)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발생한 2014년 ‘방어 절벽 전쟁’ 때에도 중재자 임무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이번 중재 역할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 혼란 속에서 움츠렸던 이집트가 역내 현안 해결을 위하여 예전보다 더욱 민첩하게 움직이며 서서히 깨어나는 거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종식을 위해 중재 역할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가자 지구와 이집트가 지리적으로 연결된 만큼 전쟁이 장기화하고 확대되면 전쟁의 불똥이 이집트로 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재자 역할로 이집트가 중동 현안 해결을 선도하는 지도적 국가임을 국제사회에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인권을 탄압한다는 비판을 받는 시시(Abd al-Fattah al-Sisi) 대통령은 중재를 기회로 삼아 인권문제에 민감한 미국이 이집트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리라 기대한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의 가자전쟁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시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블링컨(Anthony Blinken) 미 국무장관은 카이로, 예루살렘, 라말라와 암만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슈크리(Sameh Shoukry) 이집트 외교장관은 암만과 라말라를 오가며 중재하였고, 카멜(Abbas Kamel) 이집트 정보국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하마스 간 견해차를 줄이기 위해 셔틀 외교를 펼쳤다.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관계 개선에도 도움을 주었다. 양국 간 안보 공조뿐 아니라, 13년 만에 아쉬케나지(Gabi Ashkenazi)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카이로를 방문하는 외교성과를 거두었다. 이집트와 카타르의 관계 회복 기미도 보인다. 3년 반 동안 사우디, UAE, 요르단과 함께 이집트가 카타르에 취한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면서, 양국 간 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다. 5월 가자전쟁 종결 이후 알사니(Sheikh Mohammed bin Abdulrahman Al Thani) 카타르 외교장관이 카이로를 방문하여 가자 지구 안정을 논의하기도 하였고, 카타르 국왕은 시시 대통령에게 카타르를 방문해달라는 초대장을 보냈다.



이집트 외교정책은 다른 지역에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리비아에서 이집트는 동부의 하프타르(Khalifa Haftar) 장군을 지지했지만, 리비아 통합정부(GNA)가 유엔의 승인을 받은 이후로는 GNA도 지지하고, 드베이베(Abdul Hamid Dbeibeh) 리비아 총리를 초대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터키와 카타르의 지원을 받는 리비아 내 세력은 리비아와 맞닿은 이집트 서부 국경을 위협하지 않는다. 최근 이집트와 터키 관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리비아와 무슬림 형제단 문제를 놓고 대립해 온 양국 간 관계 개선의 신호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홍해 지역에서 이집트의 활동 증가도 매우 흥미롭다. 에티오피아가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면서 이집트는 우간다, 수단, 남수단, 소말리아, 탄자니아, 지부티와도 우호 관계를 맺었다. 시시 대통령은 5월 27일 지부티를 방문하였다. 또 나일강 인근 국가인 우간다, 케냐, 부룬디, 수단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티오피아의 역내 야망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홍해와 바브 알만다브(Bab al-Mandab) 해협에서 이집트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만하다.



역내에서 지도적 위치는 정지, 경제, 군사, 인구, 자원을 겸비하였을 때 차지할 수 있다. 이집트는 최근 국방력 강화에 전력을 쏟고 있지만, 시나이 반도의 안전을 위협하는 IS(이슬람국가)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광 수입 감소와 인구 증가로 경제회복 역시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 인권탄압 문제 해결도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과거에 누렸던 명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이집트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이집트가 역내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여 역내 안녕을 가져오고, 자국 번영도 이루며 예전의 “주요 국가(key state)”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역내 분쟁의 탁월한 중재자 이집트를 기대해 본다.

타흐야 미쓰르(Tahya Misr, 이집트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