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다시 이스라엘과 가자(Gaza) 지구 하마스(Hamas)가 무력충돌했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먼저 예루살렘으로 로켓을 쏘면서 이스라엘이 반격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전쟁의 양상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alestine Islamic Jihad)의 로켓 공격을 이스라엘은 아이언돔(Iron Dome)으로 요격하고 두 단체의 근거지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인명피해는 항상 이스라엘보다 훨씬 많았고, 이스라엘은 과도한 무력사용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하마스는 민간 시설이나 그 주변에 군사 시설을 세워 이스라엘의 원점 타격을 피하려 하고, 이스라엘은 정밀 타격으로 대응하지만,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05년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총리는 가자 지구에서 8,000명의 정착민과 21개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이스라엘군도 1967년 6일 전쟁 이전 국경으로 물러났다. 2006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Mahmud Abbas) 수반이 이끄는 온건파 파타흐(Fatah)에 압승을 거두며 제도권에 진출하였다.
2007년 가자 지구 통치권을 놓고 하마스와 파타흐 무장대원 간 무력충돌하였는데, 하마스가 승리하면서 어렵게 구성된 파타흐-하마스 통합정부가 무너졌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하마스의 가자 지구와 파타흐의 요르단강 서안 두 지역으로 완전히 분열되었다.
하마스는 파타흐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원하지만, 이슬람 가치에 기반한 국가를 추구한다. 파타흐는 협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모색하지만, 하마스는 무장저항이 우선이고 대화는 전술에 불과하다. 하마스는 아랍어 단어 ‘이슬람 저항 운동’(Harakat al-Muqawama al-Islamiyya) 첫 철자를 모아서 만든 말인데, 아랍어에는 ‘열정’이라는 뜻을 지닌 하마스라는 단어도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가자 지구에는 이미 ‘무슬림 형제단’ 가자 지부가 존재하였다. 1973년 하마스 창설자 아흐메드 야신(Ahmed Yssin)은 무슬림 형제단 지부로 이슬람 센터(al-Mujama al-Islamiyya)를 세웠는데, 1987년 말 제1차 인티파다(Intifadah,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중에 이름을 하마스로 정하였다.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항전(Muqawama)은 조직의 명칭에서 보듯 하마스의 존재 이유(raison d’être)다. 항전을 일시적으로 미룰 수는 있어도 포기할 수는 없다. 항전이 없으면 하마스와 파타흐(Fatah)의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장투쟁은 자신감이 충만하고 만반의 전쟁 준비가 됐을 때 시도하는 것이다. 반면, 고난의 시기에는 다와(da’wa, 빈곤층 구제, 의료, 교육, 선교 사업)에 집중한다. 다와는 신입 조직원을 모집하고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며 조직의 생존을 연장하고 지하드(무장투쟁)를 준비하는 단계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Oslo Accords)이 체결된 이후,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 이행과 추가 협상을 방해하고,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살폭탄 테러 항전을 벌였다. 이번에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의 지지를 얻고, 온건파 파타흐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대이스라엘 항전을 벌였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하마스의 인기는 파타흐를 앞질렀다. 이번 하마스 항전의 목적은 무기력하고 부패한 파타흐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신물이 난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지지를 얻어 명실공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또 하마스는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이자 약자로 보이게 만들어 약자를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동정심을 얻고자 주민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얄팍한 전술을 사용하였다.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이스라엘군 폭격에 가자 주민 수천 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주민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이슬람법이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사회학자 아이젠슈타트(S. N. Eisenstadt)는 현대 원리주의 운동(Fundamental movement)을 프랑스 혁명 과정에 등장한 급진파 자코뱅(Jacobin)당에 비유하여 “현대판 자코뱅 운동”으로 불렀다. 자코뱅당은 혁명 수호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공포정치를 펼쳤고, 수많은 반대파가 혁명재판소를 거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전체주의 사고와 대중동원을 이용해 이슬람 가치를 수호하는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과 닮았다. 이슬람식 혁명을 위해 모든 희생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는 하마스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압바스 수반과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압바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하마스가 요르단강 서안마저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평화협상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해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면 하마스와 의 다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스라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하마스와도 장기휴전을 위한 대화를 해야만 한다. 가능한 모든 자원과 수단을 이용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는 돌파구를 빨리 찾아야 한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시간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마스의 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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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람(Kalam) 2호.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하마스의 하마스를 위한 하마스의 전쟁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중동산업협력포럼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지난 5월 10일 다시 이스라엘과 가자(Gaza) 지구 하마스(Hamas)가 무력충돌했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먼저 예루살렘으로 로켓을 쏘면서 이스라엘이 반격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전쟁의 양상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alestine Islamic Jihad)의 로켓 공격을 이스라엘은 아이언돔(Iron Dome)으로 요격하고 두 단체의 근거지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인명피해는 항상 이스라엘보다 훨씬 많았고, 이스라엘은 과도한 무력사용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하마스는 민간 시설이나 그 주변에 군사 시설을 세워 이스라엘의 원점 타격을 피하려 하고, 이스라엘은 정밀 타격으로 대응하지만,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05년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총리는 가자 지구에서 8,000명의 정착민과 21개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이스라엘군도 1967년 6일 전쟁 이전 국경으로 물러났다. 2006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선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Mahmud Abbas) 수반이 이끄는 온건파 파타흐(Fatah)에 압승을 거두며 제도권에 진출하였다.
2007년 가자 지구 통치권을 놓고 하마스와 파타흐 무장대원 간 무력충돌하였는데, 하마스가 승리하면서 어렵게 구성된 파타흐-하마스 통합정부가 무너졌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하마스의 가자 지구와 파타흐의 요르단강 서안 두 지역으로 완전히 분열되었다.
하마스는 파타흐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원하지만, 이슬람 가치에 기반한 국가를 추구한다. 파타흐는 협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모색하지만, 하마스는 무장저항이 우선이고 대화는 전술에 불과하다. 하마스는 아랍어 단어 ‘이슬람 저항 운동’(Harakat al-Muqawama al-Islamiyya) 첫 철자를 모아서 만든 말인데, 아랍어에는 ‘열정’이라는 뜻을 지닌 하마스라는 단어도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가자 지구에는 이미 ‘무슬림 형제단’ 가자 지부가 존재하였다. 1973년 하마스 창설자 아흐메드 야신(Ahmed Yssin)은 무슬림 형제단 지부로 이슬람 센터(al-Mujama al-Islamiyya)를 세웠는데, 1987년 말 제1차 인티파다(Intifadah,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중에 이름을 하마스로 정하였다.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항전(Muqawama)은 조직의 명칭에서 보듯 하마스의 존재 이유(raison d’être)다. 항전을 일시적으로 미룰 수는 있어도 포기할 수는 없다. 항전이 없으면 하마스와 파타흐(Fatah)의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장투쟁은 자신감이 충만하고 만반의 전쟁 준비가 됐을 때 시도하는 것이다. 반면, 고난의 시기에는 다와(da’wa, 빈곤층 구제, 의료, 교육, 선교 사업)에 집중한다. 다와는 신입 조직원을 모집하고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며 조직의 생존을 연장하고 지하드(무장투쟁)를 준비하는 단계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Oslo Accords)이 체결된 이후,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 이행과 추가 협상을 방해하고,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살폭탄 테러 항전을 벌였다. 이번에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의 지지를 얻고, 온건파 파타흐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대이스라엘 항전을 벌였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하마스의 인기는 파타흐를 앞질렀다. 이번 하마스 항전의 목적은 무기력하고 부패한 파타흐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신물이 난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지지를 얻어 명실공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또 하마스는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이자 약자로 보이게 만들어 약자를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동정심을 얻고자 주민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얄팍한 전술을 사용하였다.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이스라엘군 폭격에 가자 주민 수천 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주민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이슬람법이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사회학자 아이젠슈타트(S. N. Eisenstadt)는 현대 원리주의 운동(Fundamental movement)을 프랑스 혁명 과정에 등장한 급진파 자코뱅(Jacobin)당에 비유하여 “현대판 자코뱅 운동”으로 불렀다. 자코뱅당은 혁명 수호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공포정치를 펼쳤고, 수많은 반대파가 혁명재판소를 거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전체주의 사고와 대중동원을 이용해 이슬람 가치를 수호하는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과 닮았다. 이슬람식 혁명을 위해 모든 희생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는 하마스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압바스 수반과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압바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하마스가 요르단강 서안마저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평화협상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해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면 하마스와 의 다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스라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하마스와도 장기휴전을 위한 대화를 해야만 한다. 가능한 모든 자원과 수단을 이용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는 돌파구를 빨리 찾아야 한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시간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마스의 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