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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슬람 이야기] 레바논의 마론파 가톨릭교회(Maronite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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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레바논에서 발생한 대형폭발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레바논의 마론(Maron)파 그리스도인에 대해 잠깐 짚어보려고 한다.

우선 이름은 410년 경 세상을 떠난 마룬(Marun)이라는 수도자의 이름에서 나왔다. 아랍어도 마룬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마룬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시리아어로 주인, 스승을 뜻하는 “마르(Mar)”에 축약접미사 “운(un)”이 붙은 것으로 작은 주인, 작은 스승이라는 말이다.

이를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마론(Μάρων/Maron)으로 음사하였다. 그리스도교 수도승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의 안토니를 본받아 은둔수도자의 삶을 추구한 마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마론파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의 원래 거점은 오늘날 터키의 안타키야(Antakya)인 안티오키아였다. 안티오키아는 초대 그리스도교 중심지 5곳, 이른바 펜타르키(Pentarchy, Πενταρχία) 중 하나였다(예루살렘,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의 성 요한 마론(아랍어로는 유한나 마룬)의 지도 아래 실질적인 교파를 이루었다.

마론파는 극구 부인하지만, 단의론을 따랐기에 주류교회의 박해를 받고 레바논산으로 공동체를 옮긴 것 같다. 단의론(單意論, Monothelitism, Μονοθελητισμός)이란 신성과 인성을 온전히 다 갖춘 예수에게 신적인 의지만 있다는 신학적 입장이다.

교회의 주류는 양성양의론(兩性兩意論)이다. 신성과 인성을 온전히 다 갖춘 예수에게 인간적인 의지와 신적인 의지가 온전히 다 있다고 주장한다.

무슬림의 박해도 피하면서 레바논산에서 은거하던 이들은 십자군 전쟁 때인 1182년 로마교황청과 연결되어 로마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158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로마교황청에 마론파 신학교를 세웠다.

예수회가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당시 유대인출신이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초리를 가득 받았던 예수회원 엘리아노(Giovanni Battista Eliano, 1530-1584)가 마론파와 로마가톨릭을 다시 연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세기 프랑스의 지원을 든든하게 받은 마론파는 레바논 건국의 주역이 되었으나, 이민과 저출산으로 오늘날 레바논 내 교세는 급격히 축소된 상태다. 로마가톨릭과 일치를 이룬 중동의 교회 중 유일하게 분파가 없다.

레바논에서 서구로 이주를 많이 하여, 오늘날 마론파 교회는 미국, 브라질, 유럽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례어는 시리아어와 아랍어다. 자신의 고유 교회전례방식으로 미사를 한다. 수도자는 독신이지만, 신부는 결혼이 가능하다.

*발로뉴는 이민과 저출산으로 레바논 내 마론파 인구가 줄어들었다고 봄(Jean-Pierre Valognes, Vie et Mort des Chrétiens d’Orient, Paris: Fayard, 1994, p.637).

사진 : 성 마론. 19세기 러시아에서 그림.
출처: The Temple Gallery
http://www.templegallery.com/main.php?mode=3&p1=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