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rmation

What we need to know about Middle East


사회문화[중동은 축구다] 북아프리카 축구의 문화사 3 – 모로코

조회수 981

장원재(전 숭실대 문창과 교수/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경기가 끝났다. 3-0 완승이다. 그런데 경기장 분위기가 이상하다. 승리한 팀 선수들이 일제히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흐느끼는 선수도 있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선수도 있다. 패한 팀 선수들이 이들을 위로한다. 그래도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1998년 6월 23일,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열린 월드컵 A조 조별리그 최종전 직후의 풍경이다. 승자는 모로코, 패자는 스코틀랜드다. 모로코 선수들이 서럽게 눈물을 뿌린 이유가 있다. 당연히 올라가리라 생각했던 16강행 티켓이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으로. 모로코가 겪은 일은 패자 스코틀랜드 선수들조차 안타깝다고 느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주 전인 1998년 6월10일 몽펠리에의 드 라 모송 스타디움. 1970, 86, 94년에 이어 4번째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모로코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노르웨이였다. 경기 초반부터 모로코는 놀랄만큼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장을 지배했다. 마침내 전반 38분, 노르웨이 진영 왼쪽 측면을 허물며 골라인 방향으로 파고들던 7번 하지가 살짝 방향을 꺾어 중앙 쪽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몸을 튼 뒤 오른발로 강타를 우겨 넣었다. 1-0 모로코의 리드. 하지만 전반전 추가시간 직전의 자책골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모로코 진영 좌중간에서 노르웨이가 프리킥을 띄워 올렸는데 골키퍼와 수비수, 노르웨이 공격수가 탄착점을 향해 동시에 점프하며 공중에서 엉켰다. 골키퍼의 펀칭은 헛손질, 그의 손을 지난 공은 노르웨이 공격수의 이마와 어깨 중간에 애매하게 맞으며 모로코 골문을 향해 어정쩡하게 비행했는데, 비행라인과 반대편에서 달려와 솟아오르며 이 공을 걷어내려던 18번 치포의 노력은 이마에 공을 맞추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야속하게도 결과는 자책골. 자책골이 아니었더라도 노르웨이의 득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모로코는 치포의 노력을 평가하고 결과를 질책하지 않았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모로코는 다시 국면을 지배했다. 14분이 지난 59분, 후방 등 뒤에서 날아온 롱볼을 9번 하다르가 절묘한 퍼스트터치로 발 바로 앞에 떨궈 놓았다. 세컨드터치는 살짝 정교함이 떨어졌지만, 하디르는 수비진 사이에서 공의 통제권을 지켜내며 오른발 대포알 강슛을 터뜨렸다. 2-1로 다시 모로코의 리드. 이 우세는 그러나 2분 이상을 지속하지 못했다. 노르웨이의 공중볼을 향해 수비수와 골키퍼가 동시에 점프. 수비수에게 일부 공중동선을 잘린 골키퍼는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수비수 등 뒤로 팔을 뻗어 가까스로 펀칭했다. 이 볼은 노르웨이 공격수의 발 앞으로 바운드 되었고, 15번 예겐이 빈 골문을 향해 여유있게 차 넣으며 2-2 무승부. 모로코의 두 골은 모두 완성도가 높았고 노르웨이의 득점은 둘 다 수비 실수가 섞인 실점이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다만,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모로코 감독은 ‘우리 수비가 실수한 것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힘과 높이가 워낙 좋았다. 최종 골 장면만 보면 실수한 듯 보이지만 실점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피지컬에서 밀린 것’이라며 선수들을 감쌌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그리고 이겨야만 했던 경기를 비긴 후유증이었을까? 6일 후 낭트에서 벌어진 2차전. 전 대회 우승팀이자 이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진군하는 남미의 절대 강자, 히바우두, 호날두, 둥가, 카를로스 알베르토가 포진한 막강 화력의 브라질에게 모로코는 0-3으로 완패했다. 일방적으로 밀리며 힘 한 번 쓰지 못한 무력한 경기였다. 첫 경기의 모로코와 이날의 모로코가 과연 같은 팀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전력을 다해 승부를 걸기 위한 작전상의 후퇴였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6월 23일 생테티엔에서 모로코가 맞이한 상대는 스코틀랜드. 여기서 잠시 당시의 상황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브라질 2승. 승점 6점. 5득점 1실점 골득실차 +4.

노르웨이. 2무승부 승점 2점. 3득점 3실점 골득실차 0.

스코틀랜드 1무1패 승점 1점. 2득점, 3실점 골득실차 –1.

모로코 1무1패 승점 1점. 2득점 5실점 골득실차 –3.


브라질은 최종전에 상관없이 16강 진출 확정이다. 나머지 세 팀에게는 모두 찬스가 있다. 모로코는 비기면 무조건 탈락이지만, 스코틀랜드에게 승리하면 브라질이 노르웨이에 지지 않는 한 16강 진출이다. 비기면 브라질, 스코틀랜드에 밀려 탈락. 스코틀랜드는 조금 더 유리했다. 이기면 역시 브라질이 노르웨이에 지지 않는 한 16강 진출이다. 모로코와 비겨도 브라질이 노르웨이를 2골 차 이상으로 잡아주면 16강 진출. 모로코와 2-2로 비기면 브라질이 한 골 차로만 이겨도 16강 진출. 그래서 모로코와 스코틀랜드 전은 피차 간에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진짜 승부였다. 한쪽이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맥빠진 경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날의 모로코는 브라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초반부터 선수단 전체의 몸놀림이 가벼웠다. 이 경기의 히어로는 14번 바시르와 9번 하다르다. 23분, 하프라인 뒤에서 날아온 롱볼을 바사르가 받아 깔끔한 퍼스트터치와 군더더기없는 연결동작으로 스코틀랜드 골문 왼편 다소 각이 없는 지점에서 강력한 왼발슛을 날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골키퍼의 오른편 거의 틈이 없는 공간을 힘과 스피드로 뚫고 들어간 멋진 마무리였다. 후반 1분, 이번에도 후방에서 단 번에 날아온 공을 받은 하다르가 달려나오는 골키퍼의 머리를 넘기는 로빙 칩을 날렸다. 골키퍼의 제자리 점프에 막힌 듯 보였던 공은 그러나 손끝에 살짝 걸린 채 여전히 스코틀랜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골키퍼가 180도로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공을 쫓았고, 공과 골키퍼가 모두 골망을 뒤흔들었지만, 사람보다는 공이 조금 더 빨랐다. 2-0. 지면 무조건 탈락. 초조해진 스코틀랜드는 무리수를 거듭하다 8번 벌 리가 퇴장을 당했고, 85분 모로코는 추가 득점에 성공하며 승리에 마침표를 찍는다. 역시 후방에서 날아온 볼을 하디르가 백헤딩으로 뒤쪽으로 떨궜는데, 뒤따라오던 바시르가 바운드된 공을 가벼운 터치로 스코틀랜드 수비진 머리 위로 띄어올리며 방어막을 벗겨냈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는 공을 따라 수비진 사이를 발레리나 같은 터닝스텝으로 돌파한 뒤, 바운드된 공의 리듬에 맞춰 더뜨린 오른발 직선타! 이 한 방으로 모로코는 3-0으로 달아나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같은 시각 마르세유 벨로드롬 스타디움. 사흘 전인 6월 20일 한국이 히딩크의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유린당한 바로 그곳에서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경기가 열렸다. 77분까지 스코어는 0-0이었는데 마지막 13분을 남기고 승부가 요동쳤다. 브라질의 선취골에 노르웨이가 바로 반격에 나서며 1-1. 그리고, 88분 노르웨이가 페널티킥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2-1로 승리했다.


브라질 대 노르웨이 경기는 모로코 대 스코틀랜드 전과 같은 시각에 시작했지만, 경기 중 부상 등으로 진행이 살짝 느렸다. 노르웨이의 역전골이 터진 시점은 모로코의 승리가 확정된 후 약 2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브라질 대 노르웨이가 1-1로 끝났다면 모로코는 브라질과 함께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 현실이, 희망이 불과 2분 사이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찰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사람들. 역경을 이긴 사나이들의 축제는 비탄의 눈물바다로 변했다. 문제는 노르웨이가 얻은 페널티킥이 별다른 신체 접촉이 없었는데도 주어진 ‘논란의 판정’이라는 점이다. 다음날 프랑스 신문 가운데 ‘심판의 상상력이 만든 페널티킥’이라고 제목을 뽑은 곳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로코 선수들은 더더욱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자신들도 충분히 비통해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패자인 스코틀랜드 선수들이 진심을 다해 모로코 전사들을 위로한 이유다.


모로코 축구협회와 이프리카 축구연맹이 공식 항의서한을 발송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3패로 탈락했으되 세 경기 모두 1골 차로 물러섰던(벨기에 0-1, 사우디 1-2, 네덜란드 1-2) 모로코는 98년에도 이렇게 애절한 마음을 품은 채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한 골 차 징크스’는 2018년에도 반복된다. 이란과 포르투갈에게 각각 0-1로 패배, 마지막 스페인 전 2-2 무승부로 역시 아쉬운 조별리그 탈락.


그렇다면 그 판정은 부당한 것이었을까. 2014년 FIFA가 1998년 모로코의 눈물을 유튜브 미니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폭풍우 한 복판에 선 심판(The Referee at the Centre of World Cup).’ 문제의 판정을 내린 주심의 이름은 미국 국적의 에스판디아르 바하마스트(Esfandiar Baharmast). 94년 월드컵 나이지리아가 거함 스페인을 3-2로 잡은 희대의 명 경기를 주재하며 칼날 같은 판정으로 명성을 얻었던 사람이다. 바하마스트는 화면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 페널티킥이다. 브라질 수비수가 노르웨이 공격수의 옷을 잡아당겼고, 상의가 돛단배의 돛처럼 늘어나는 걸 내 눈으로 봤다. 내가 망설이지 않고 판정을 내린 이유다.’ 그리고 증거 동영상을 제시했다. TV 중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이 판정이 논란이 되자 그의 아내가 전 세계의 SNS를 뒤져 찾아낸 ‘바로 그 순간 그 장면’이다. 동영상은 증거한다. 잡아당긴 것, 옷이 늘어난 것, 그 영향으로 공격수가 넘어진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그래서 결론은 확실하다. 그의 판정이 옳았다.


그렇다고 모로코의 아쉬움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브라질이 노르웨이에 패한 건 어떤 기준으로든 이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틀라스의 사자들(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칭)이 자랑하는 최고의 업적은 ‘98년의 눈물’이 아니다.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한 나라가 바로 모로코다. 월드컵 역사에 빛나는 ‘1986년의 신화’다. (중동 팀 최초의 16강 진출은 1994년의 사우디아라비아, 두 번째로 16강 고지를 밟은 북아프리카 팀은 2014년의 알제리다.)


70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서독 1-2패, 페루 0-3패, 불가리아 1-1 무승부로 조별리그 탈락) 이후 16년 만에 다시 본선에 얼굴을 내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부터 모로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홈앤드어웨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진 전장을 시에라레온, 말라위, 이집트, 리비아를 연파하며 5승2무1패로 통과. 8경기를 치르는 동안 득점은 12, 실점은 단 1점에 불과했다. 패전, 실점도 예선 최종전 리비아와의 어웨이경기 0-1 패배에서 비롯한 것이다. (홈 경기는 3-0 승리)


마침내 본선. 1986년 6월 2일 몬테레이의 유니베르시타리오 경기장. 모로코의 F조 첫 상대 팀은 지난 대회 4강, 4회 연속 본선진출, 당대 유럽 3대 스트라이커의 하나인 보니에크를 보유한 1번 시드 팀 폴란드였다. 모로코는 ‘일방적 열세’의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며 대등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수비적으로 플레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키는 축구로만 일관한 것도 아니다. 경기는 소모전이었다. 전체적으로 90분 내내 두 팀 모두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전반 막판, 다리 골절상에서 회복해 대회 직전에서야 완치판정을 받은 티오우미의 중거리슛, 80분이 지날 무렵 폴란드 우르반의 23미터 중거리슛을 모로코 키퍼 자키가 왼편으로 몸을 날리며 막아낸 것이 양 팀 골키퍼가 능력을 보여준 유일한 장면이다. 폴란드는 보니에크를 후방 미드필더로 배치해 그의 체력을 아끼려 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까지 계산한 이 포진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후반 시작부터 전방으로 나선 보니에크는 폴란드의 공격진을 이끌었지만 결국 모로코의 저지선을 뚫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85분 폴란드의 오른발 땅볼 슛이 모로코 골키퍼 오른편 골대를 맞고 가운데로 흐른 것이다. 현지 언론은 ‘경기 내용으로 보아 0-0은 공평한 결과다. 이 슛이 골에 가장 근접한 상황이었지만, 만약 폴란드가 1-0으로 이겼다면 그것은 공평한 결과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썼다. 박진감 넘치는 재미있는 축구는 아니었지만, 모로코는 조 최강 팀과의 일전에서 승점을 챙겼다.


6월6일 몬테레이의 테크놀로지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2차전.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 0-1로 일격을 당한 잉글랜드는 처음부터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반 막판 두 명의 핵심전력을 부상과 퇴장으로 잃어버렸다. 41분 주장 브라이언 롭슨이 어깨탈골로 교체. 1분 후 레이 위킨스가 파라과이인 주심의 판정에 항의하며 심판을 향해 공을 집어 던졌다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다. 이것은 잉글랜드가 월드컵에 기록한 첫 번째 레드카드였다. 이 두 사건이 이 경기의 가장 극적인 상황이다. 양 팀 모두 서로의 수비진을 허물지 못했고, 골문 가까운 거리에서 날린 슈팅도 전무했다. 0-0.


F조의 상황은 안개정국으로 변했다. 4팀 모두 16강 진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승리 2점, 무승부 1점이 주어지던 시절이다. 월드컵 출전국도 24개국이어서, 각조 1, 2위 팀은 물론, 6개조의 조 3위 팀 가운데 상위 4개팀이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네 팀이 각각 한 경기만을 남겨두었던 F조의 당시 상황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폴란드: 1승1무, 승점 3점, 골득실 차 +1

포르투갈: 1승1패, 승점 2점, 골득실 차 0.

모로코: 2무, 승점 2점, 골득실 차 0.

잉글랜드: 1무1패, 승점 1점, 골득실 차 –1.


총 4경기가 치러진 가운데 0-0이 두 경기, 1-0이 두 경기인 역대 최소득점 조별리그. 모든 팀은 ‘지면 탈락’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패하면 어느 팀이든 조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상대는 포르투갈. 장소는 과달라하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모로코 팀 감독과 기자단 사이에 가벼운 설전이 오갔다.


- 두 경기 모두 지나치게 수비만 한 것이 아니냐?

“월드컵에서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 살아남느냐가 더 중요하다.”

-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나? 모로코가 16강에 갈 수 있다는 뜻인가?

“어차피 지면 탈락이니 지난 두 경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처음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할 생각이다.”

- 이긴다고 자신하나? 근거가 있나?

“우리 선수들을 믿으니까. 그리고 포르투갈 선수단 내부의 문제도 있지 않나.”


포르투갈 선수단 내부의 문제? 이건 주도면밀하게 도발한 고도의 심리전이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이어 20년 만에 본선에 복귀한 포르투갈은 대회 개막 직전 자중지란에 휩싸였다. 보너스 미지급 문제로 선수단 전원이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월드컵 사상 최초의 파업 위협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몇몇 아프리카 팀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 단, 실제 파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없다.) 포르투갈 축구협회와 선수단 사이의 협상은 공회전을 거듭했다. 포르투갈 축구협회가 FIFA에게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별도의 22명(당시 엔트리는 22명. 현재는 제3의 골키퍼를 추가해 23명)을 멕시코로 보내겠다. 긴급상황이니만큼, 막판 엔트리 전원교체라는 예외조항을 적용해 달라’고 공문을 보낼 정도였다. 개막 직전의 극적인 타결로 오리지널 멤버들이 대회에 나섰지만 팀 내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첫 경기 잉글랜드 전을 1-0으로 잡은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 선수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의 문제. 포르투갈은 66년 월드컵 준결승 홈그라운드의 잉글랜드에게 1-2로 패했다. 그 경기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 포르투갈 축구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것은 참가 수당 논란을 넘어서는, 축구인과 포르투갈 국민으로서의 본질적인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둘째, 포르투갈과의 경기 전날 밤 심야에 일어난 잉글랜드 팀 닥터 베론 에드워드 씨의 심장병 발작과 긴급 병원 후송, 그리고 그에 따른 잉글랜드 선수단의 컨디션 조절 실패. 그래서 이어진 결과가 포르투갈의 1-0 승리다.


‘잉글랜드를 이겼으니 그만하면 포르투갈은 목표를 달성한 것 아니냐, 뭔가 의욕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무리를 해서라도 최후의 한 발을 더 내딛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모로코는 경기 전날 이렇게 포르투갈의 심리적인 약점을 파고들었다.


드디어 킥오프. 15분 프리킥에서 넘어온 볼을 최전방까지 진격했던 수비수 올리베이라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 자키가 선방. 여기까지가 포르투갈이 우세했던 시간이다. 모로코는 나머지 75분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8분 포르투갈 수비수가 자기 진영에서 횡으로 걷어낸 볼을 끊어낸 카이리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날린 23미터 중거리슛이 다마스 골키퍼 오른편 구석 하단을 정확하게 관통하며 1-0. 27분 이번에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골이 나왔다. 칼리피가 오른편에서 높고 긴 크로스를 날렸다. 전진수비를 펼치던 뒷공간으로 날린 연결. 이날의 영웅 카이리가 공을 향해 달려오며 스피드와 탄력을 죽이지 않은 채 왼발을 휘둘렀다. 볼이 지면에 닿을 만한 순간에 때린 대각선 슛은 낮게 비행하며 포르투갈 골망을 파도처럼 출렁였다. 테니스의 하프발리를 연상시키는, 질주와 슛을 연결동작으로 보여준 논스톱 액션! 기술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86년 월드컵 조별리그 3대 명장면의 하나다. 63분, 이번에는 티오우미의 크로스를 받은 크리마우가 골키퍼를 바라보며 뛰어가던 탄력을 이용해 가볍고 여유있는 부드러운 슛으로 득점하며 3-0을 만들었다. 첫 골 실점 후 방황하던 포르투갈은 0-2가 되자 기세에서 밀렸고, 이후 모로코에게 무수한 찬스를 허락했다. 종료 10분 전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난 뒤였다. 66년 월드컵 대 북한 전, 0-3을 5-3으로 뒤집은 기적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 후, 호세 토레스 감독은 사임을 발표했다. 모로코는 그렇게 ‘조 1위로 16강 진출’이라는 훈장을 달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및 아랍국가 사상 최초로 16강에 오르며 그 이상의 전인미담의 고지를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16강전 모로코의 상대는 당시까지 단 한 번도 월드컵 4강에서 밀려난 적이 없는 절대 강자 서독. 장소는 모로코가 폴란드를 상대했던 몬테레이의 유니베르시타리오 경기장이었다. 이 경기도 일종의 복수전이다. 처음 월드컵에 나간 1970년 모로코의 데뷔전 상대가 바로 서독이었다. 그 대회의 개최국도 멕시코였다. 마이어, 우베 쉴러, 베켄바우어, 뮐러가 버틴 우승후보 1순위의 서독과 배당률 최하위 1/500의 모로코가 맞붙은 미스매치. 하지만 모로코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들의 축구를 했다. 모로코의 전진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서독이었다. 모로코는 21분 섬세한 패스를 이어가며 선제골을 넣어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1-0으로 리드한 채 전반전을 마쳐 자국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56분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종료 12분 전까지는 스코어도 경기 내용도 대등한 진행. ‘득점기계’ 뮐러의 득점으로 마침내 서독이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스코어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여러 모로 아쉬운 성적표였다. 그런데, 16년을 기다려 이제 훨씬 더 중요한 상황에서 복수의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1986년의 모로코는 신중하게 서독을 상대했다. 16강전 이후는 패배란 곧 탈락이다. 다음 경기와 경우의 수를 따질 수 없는, 그야말로 ‘내일이 없는’ 냉정하고 냉혹한 무대다. 우르과이와 1-1로 비기고, 덴마크에 0-2로 패하는 등, 1승 1무 1패로 힘겹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서독이지만 그들은 늘 중요한 경기에서 저력을 발휘하는 강호 중의 강호였다. 그래서 모로코의 작전은 ‘이기자’가 아니라 ‘지지 않는 축구’였다. 확률 상 승부차기로 가는 편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모로코는 예선 첫 두 경기 때 선보였던 강력한 그물망을 다시 쳤다. 서독은 모로코의 수비망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미드필드부터 저지선을 마련한 모로코 선수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 딱 한 번, 전반 44분 왼편 저지선이 뚫리며 낮고 빠른 크로스를 허용했을 뿐이다. 이 볼을 루메니게가 뛰어들며 수비수의 방해 없이 무인지경에서 슬라이딩 슛으로 연결했다. 골대 정 중앙이나 오른쪽으로 들어갔다면 그대로 득점이 되었을 터이다. 이 슛은 그러나 골문 약간 왼쪽으로 향했고, 크로스에 대비하여 그쪽을 지키다 황급히 복귀하던 자키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루메니게를 마주보며 막아낸 것이 아니다. 골문 쪽으로 뛰어오던 자키는 말하자면 몸의 중심축과 골대가 90도 각도로 마주 본 상황이었다. 자기 머리 위를 지나 골대를 향해 날아가던 공을 배구선수가 러닝 점프를 하듯 양 팔을 뻗어 저지하고, 수직으로 솟아오른 공을 2차 동작으로 안전하게 품에 안았다.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에 팀을 구한 혼신의 세이브였다. 후반에도 서독은 단 한 번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 슛도 각도를 좁히며 달려나온 자키의 발에 걸렸다. 그만큼 모로코의 수비진은 견고했다. 다만, 수비에 집중하느라 모로코는 위협적인 공격 장면을 90분 동안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


모두가 연장전을 상상하던 89분. 서독이 모로코 진영 골대 밖 30미터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는 8번 마테우스. 4년 후 10번을 달고 통일 독일팀 주장이 되어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로 그 사나이다. 워낙 먼 거리라 모로코는 3명만 장벽을 쌓았다. 직접 슛이 아니라 연결에 의한 공격을 예측한 것이다. 역사는 순간에 뒤바뀔 수도 있는가. 갑자기 수비수 하나가 장벽에 합류했다. 4명이 한 라인에 서자 옆 자리의 한 명이 장벽에서 빠져나와 두 어 걸음을 뒤로 수비 위치를 옮겼다. 마테우스가 프리킥으로 직접 슛을 시도한 건 바로 그 순간이다. 지면과 거의 붙은 채 빠르게 나아간 볼은, 모로코 수비벽을 옆을 지나, 골키퍼 왼 편의 가장 낮은 쪽 구석을, 전설처럼 통과해 갔다. 그리고 골네트가 출렁거렸다. 자키의 필사의 다이빙은, 이번에는 모로코를 구하지 못했다. 1-0. 골대 정면에서 잡은 느린 그림은, 수비벽 오른편을 통과한 뒤 활처럼 휘어지며 골대 구석을 향해 방향을 잡아가는, 마테우스 킥의 마법 같은 궤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마테우스와 아랫입술을 깨물며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수비벽을 향해 팔을 내젓는 자키를 대비한 사진은 86년 월드컵의 걸작선 가운데 하나다. 서독 선수들은 기쁨에 겨워 한 덩어리로 엉켰고, 모로코 선수단은 모두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소한 동작이 10초 후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것을 그때는 미처 모르는 것이 인간사의 속성이라지만,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재미라지만, 모로코 사람들에게 ‘바로 그 순간’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으로 남았다. 수비벽이 4명이었다 해도, 그 슛은 여전히 골이었을 것이다. 다만, 장벽이 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 것을 본 마테우스가 심리적으로 살짝 더 편안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 장벽이 움직였기에 자키 골키퍼의 다이빙이 그야말로 찰라 만큼 늦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그래도 그 상황은 여전히 골이었을까?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던 만큼, 사후의 복기와 상상과 가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픈 가슴을 달랠 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82년 알제리의 선전과 86년 모로코의 16강 진출, 90년 카메룬의 8강 진출은 아프리카 축구 그리고 아시아 등 축구변방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배당한다. 월드컵 출전권의 확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다.


모로코는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을 기반으로 94년부터 4차례나 월드컵 유치에 나섰으나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중에는 최종투표까지 진출했던 적도 있다. 유치를 향한 도전과 16강 이상을 향한 ‘아틀라스의 사자들’의 도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모로코 국가대표팀의 홈경기는 수도 라바트와 대서양의 카사블랑카를 오가며 열린다. 그 두 곳에서 월드컵 본선 경기가 열려도 좋으리라. 라바트, 그리고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